숲 + 집 = 치유

나무, 숲, 경관

은 삶의 가장 핵심적 요람이며 확장을 필요로 하는 삶의 원심적 시점이다. 낯선 남녀가 만나 자리를 함께하여 가장 근본적인 생리적 기능을 통해서 인류라는 ‘피’를 이어가는 곳은 집안이다. 집은 동물적인 인간이 인간적인 인간으로, 자연적 동물이 문화적 동물창조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모체다.

박이문,<박이문 아포리즘> 중에서

숲속, 자연에 살고 싶다.

Edward Wilson은 Biophilia가설에서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속에는 생명과 자연환경에 대한 사랑과 회귀본능이 내재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Bio)’과 ‘사랑(Philia)’의 합성어로 ‘생명애’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도시안에서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자연을 그리워한다. 간단히 맨몸으로 둘레길을 걷거나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 차에 캠핑도구를 가득 챙겨 며칠 캠핑장을 찾기도 한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풀섶을 걸을 때는 벌레와 살갗을 스치는 풀독을 조심해야 한다. 숲에서 만나는 모기나 동물, 독초도 위험하다. 그래도 그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은 자연을 찿는다.

장기간은 어렵다.

정해진 기간 자연을 누리는 것은 풀편을 감수하는 만큼 얻는 것이 많다. 아예 캠핑카를 구입하여 더 오래 자연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집을 떠나면 고생이다.

목재집, 집을 친환경으로 짓고 싶다.

인간은 일상속에서 늘 자연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다. 집안을 목재로 꾸미고 화초를 가꾸며 좀더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목재는 우리의 주거환경에 가장오래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다. 한옥이 그렇고, 통나무집, 경량목구조 가옥 등 목재로 집을 짓는다. 콘코리트와 철골 구조의 건물에 비교하면 견고함은 떨어질 수 있지만 목재로 지은 집은 자연친화적인 숨쉬는 건축물이다

살아있는 나무집?

나무는 의미가 매우 넓게 사용되는 순수한 우리말 이다. 살아있는 수목에서 부터 잘라 가공하여 목재로 만든 것, 땔감도 나무라고 한다. 살아있는 것, 죽은 것 할 것 없이 모두 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도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이 공존한다.

목재의 횡단면 구조

나무는 목부와 사부로 나누고, 목부와 사부 사이에는 부름켜라는 형성층이 있어, 안으로는 목부를 밖으로는 사부를 만들어 내는 살아있는 조직이다. 목부는 심재와 변재로 구성된다. 심재는 죽은 세포이고 변재는 살아 있는 세포와 죽어 있는 세포가 혼재하고 있다. 나무의 맨 바깥쪽은 죽은 세포인 코르크층의 껍질이 있다. 나무는 살아 있는 부름켜를 중심으로 뿌리에서 물을 끌어 올려 공급하는 유세포와 잎에서 광합성한 양분을 나무 전체에 공급하는 유세포가 생성되고 기능을 하다 죽으며 안으로는 나이테를 가진 목부를 밖으로는 코르크층의 껍질을 만들며 성장하고 서있다. 나무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존재다.

사람들은 집을 자연속으로 옮겨 놓고 싶어한다. 많은 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집을 가지려는 꿈을 꾼다. 소수의 사람들은 목재로 자연속에 집을 짓는 것을 넘어, 살아있는 나무를 건축에 활용하려고 한다. 살아있는 나무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나무위집, 살아 있는 나무를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지은 집

살아있는 나무를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지은 집이 나무위집(Baumhaus, treehouse)이다. 집을 한적한 시골로 옮기는 것도 좋고, 숲속에 짓는 것도 좋다. 그러나 숲속 나무위에 지은 집은 자연 경관을 온전히 누리며 거주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환경재앙을 이야기하는 요즘 산촌에 거주하며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숲을 생활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을 기대해본다. 나도 내 소유 임야를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나다운 나무위집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정보를 모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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