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여름 나는 한라산 등반 후 여수행 페리를 탈 예정이었다. 하지만 충돌 사고로 페리가 출항할 수 없었다. 일정이 있어 하는 수 없이 부산행 3000톤급 여객선 삼천리호(위의 사진은 아쉽게도 당시 찍어둔 사진이 없어 비슷한 사진을 공유마당에서 옮겨온 것임) 3등칸에 몸을 실었다. 오후 5시 경 배는 제주를 뒤로 하고 잔잔한 바다로 미끌어진다. 멀리 바라보는 바다는 느리게 돌아가는 무성 영화처럼 잔잔하다.
멀어져 가는 제주를 바라보다 선미로 밀쳐지는 물결에 시선이 닿자 갑자기 기관소리와 물소리가 내 몸을 흔든다. 기관이 굉음을 울리며 물결을 밀어내고 파도를 부딪혀 가르는 배 위에 있으면서도 먼 수평선을 보면 평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먼 곳을 보아야 멀미도 덜하게 되나보다. 가까이 시선을 두면 내 주변에 일렁이는 파도가 보이고 숨가쁘게 물을 가르는 기관의 소음이 들린다. 삶이 그런 것 같다.
13시간 걸려 부산에 도착했다. 3000톤급 삼천리호는 비바람으로 높은 너울 위 아래를 밤새 오르내리고,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배가 너울 아래로 가라앉으면 갑판 선실 창 너머로 파도가 저 만큼 위에 있다. 배가 너울 위에 서면 공중에 내던져 지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밖에 더하겠냐. 맘대로 하세요.” 눈을 붙여보려고 3등 객실로 내려가 보니 사람들은 이리저리 구르며 자고 있다. 아, 기다렸다 페리
탈 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다시는 작은 배를 타나 봐라.
지구란 수구 위로 나를 보내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2021년 겨울 나는 요트 선장자격을 갖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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