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서석면 읍내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우유와 화장실에 쓸 작은 쓰레기통 하나를 사고, 옆에 생활용품 가게가 있어 건조대를 샀다.
오후엔 아미산을 등산해 보려고 한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가방에 키위 두 개, 육포, 작은 물통을 넣고 등산지팡이를 잡았다. 어제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가 갈림길에서 아주머니를 만나 아미산 등산로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다. 나는 어제 걸었던 오른쪽 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 저녁 계곡의 끝 집이라 생각했던 집을 지나니 그 위쪽으로도 몇 채의 농가와 밭이 더 있었다. 갑자기 강아지 두 마리가 달려들 듯 사납게 짖어댄다. 잠시 멈춰서서 강아지들과 눈을 맞추며 진정시킨 후 발길을 계속했다. 마지막 농가와 밭은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낙엽송이 키 자랑을 하며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작은 등 성을 넘으니 저 아래 하얗게 눈이 얼어있는 계곡이 있고 낙엽이 쌓여 어렴풋이 길 자국만 읽을 수 있는 길이 계곡 쪽으로 이어져 있다.
가파른 길을 내려와 보니 얼어있는 눈 아래 졸졸 물소리가 난다. 계곡 옆으로 길 흔적을 찾아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작은 집 같은 것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한사람이 들어가 앉을 만한 크기다. 문은 나뭇가지로 빗장이 채워져 있다. 뭐 하는 곳일까 궁금한데 굳이 빗장 채워진 문을 열고 들여다볼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잠시 멈추어 서면 어디선가 탁 타닥타닥 박자를 맞춘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짝 마른 나뭇잎 위로 발 짝을 떼면 소리가 멈춘다. 가만히 서서 귀 기울이며 한 바퀴 둘러보니 건너편 쓰려져 있는 고목 나무에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고 먹이를 찾는 듯했다.
걸음을 재촉하여 좀 더 오르니 이름 모를 새소리가 반기고 계곡이 끝나는 등성이로 하늘이 열린다. 제법 걸었더니 땀이 차고 덥다. 장갑을 벗고 모자를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열린 등 성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고 건너편 산들이 시야에 든다. 이 맛에 힘들어도 산에 오르는 것 같다.
이제 능선을 따라 아미산 정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의 칼등 같은 바위를 타며 오르며 오래전에 쓰러져 누운 세월이 새겨진 아름드리나무와 고사목들이 서 있다. 이 능선은 양쪽으로 참 가파르다. 신선이 구름 타고 다닐 선경이 따로 없을 것같은 능선에서 저 아래로 센터가 보였다.
좀 더 정상을 향해 걷다 보니 밧줄이 걸려있는 바위가 앞을 막고 서 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바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정상을 지나 다른 길로 하산할 마음을 먹고 올라왔지만, 마음을 접고 여기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바람이 멈춘 바위 자락에 앉으니 햇살이 따듯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한 숨돌리며 주머니를 살피니 모자가 없다. 온길을 되돌아가며 찾아봐야지.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생기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산이 더 어렵다. 아래로 내딛는 발걸음은 자칫 힘이 풀려 발목을 다칠 수 있다. 조심조심 바위를 밟고 내려오다 낙엽 쌓인 길에 접어들자 미끄러져 넘어졌다. 바위는 힘차게 디뎌도 되지만 낙엽은 지그시 밟으며 바닥이 어떤지 타진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계곡을 되짚어 내려가며 모자를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가파른 계곡, 온몸으로 낙엽 위를 미끄러지며, 올라오며 보았던 흔적들을 더듬었다. 2시간 반 오른 길을 2시간 만에 내려왔다. 작은 언덕을 넘어 낙엽송 길을 따라 평지를 걸으니 발이 풀리고 쓰지 않았던 근육이 아프다. 그래도 흠뻑 땀에 젖은 몸과 마음은 가볍다.
다시 강아지 두 마리가 반긴다. 아까보다는 덜 짓는 걸 보니 조금은 안면이 트였나 보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로 들으며 강아지들에게 손 인사를 했다. 계곡을 빠져나오며 갈림길의 왼쪽 전봇대에 아미산 정상 3.1km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웃음이 났다. 아까 어떤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던 곳인데 왜 이 이정표는 보지 못한 걸까. 내가 올라갔던 길은 효제계곡 중 절터골이다. 다음엔 왼쪽 길로 아미산에 올라봐야겠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저녁을 단백질 푸짐한 식단으로 해결했다. 내일은 입소식이 있는 날이다. 삐걱대는 몸을 눕히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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